3.03.2011

드디어 봄이다.

2월 24일에 영주권 인터뷰를 했다.
하고나니, 별것도 아닌일에 왜그렇게 마음을 졸였나 싶은게 허허허 웃음이 나더라.
30분도 안되는 인터뷰 시간이었고,
여권확인하고, 미국에 와서 찍은 사진들에 대해서 물어보고
몇가지 전혀 나와 상관없는 질문들에 모두 "NO" 라고 대답했더니,
우리가 가져간 엄청난 무게의 서류들은 쳐다도 안보고
2-3주안에 메일로 그린카드를 받아볼 수 있을거라는 친절한 설명까지.

인터뷰 마치자마자 차안에서 시할아버지 할머니께, 앤 엄마, 앤 누나
또 몇몇 기도해주시는 분들께 전화를 드렸다. 그리고 발걸음도 가볍게 Durham에 갈때마다 가는 한국마트에 갔다. 그사이 마트에서 장보는 내용이 많이 달라진걸 장바구니가 보여준다.
주부가 되가는가 보다. ㅋㅋㅋㅋ
그날 점심에 앤이 한국에 있을때 온누리 교회에서 만난 동네친구 (North Carolinian) 집에
점심을 초대 받았는데, 우리가 마트에 있을때 그 친구가 전화를 했다.
그래서 앤이 한국마트에서 뭐 사가지고 갈까 하니까, 망설임도 없이 김치란다.

초대받은 집에 들어서면서 쨔쟌 하면서 건넸더니,
스파게티 만들던 이 친구가 김치병을 열어서 포크로 김치를 마구마구 먹었다.

앤친구는 결혼한지 일년 조금 넘은 커플이었는데,
믿음안에서 결혼생활을 하는 모습이, 또 하루하루 갈수록 더 사랑하게 된다는
Cheezy한 말에, 진실한 눈속에서 또 한번 배우게 된다.

집에 오는 차안에서 앤한테 말도 안되는거 알면서 '똑뚜기' 답변이 듣고싶어서 물었다.
"앤, 근데 원래 영주권 인터뷰가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데 괜히 우리만 긴장하고
걱정한거 아닐까? 아니면,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셔서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일이 된걸까? "
"기도해서 그게 잘됐다고 증명 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기도할때 믿음으로 했지?..
그렇게 했으면 된거야."

.....암튼, 앤은 아직 일주일도 안됐는데, 매일 메일박스에 신나게 뛰어나갔다 온다.
메일 체크하러 가기전에 뽀뽀해주면서 "기쁜 소식 가지고 올께!" 이러고 나가는데
주방에서 혹은 방에서 앤이 오길 기다리는 5분도 안되는 시간에 나도 모르게 기대한다.
아직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는데. ㅋㅋㅋㅋ

또 한가지 3월에 적어놓는 기쁜 소식 하나는,
엄마가 많이 '진정' 되신것 같다는거.
한 보름된것 같다. 엄마랑 통화하면, 웃기도 많이 웃고, 얘기도 많이하고
언제 한국에 올거냐고, 빨리오라고 하시는 말씀도 많이 줄었고,
우리가 한국에 있을때랑 비슷해진것 같다.
앤드류랑도 예전처럼 말도 많이하시고.
얼어붙은 얼음장이 봄맞아 서서히 녹기시작하는것처럼.

한국에서도 미국에 와서도 생각한건데,
나한테 진짜 약점은 엄마다.
엄마한테 되도록 착한딸, 자랑스러운딸 되려고
부모님 기쁘게 해드릴려고 그렇게 살았는데,
결혼문제로 속상하게 하고, 아주 멀리 떨어져 살면서 엄마한테 큰상처 준것 같아서
너무 괴로웠다.... 물론 지금도 힘들지만..
부산도 너무 멀어서 부산으로도 시집안보낸다는 엄마를 밀치고 남자 쫓아서 그것도 엄마가
싫어하는 외국인 쫓아서 태평양 건너 여기와서 이러고 있으니...
웃는 엄마를 봐도 맘이 뭉클하고, 맘 아파하는 엄마를 생각해도 맘이 찢어진다.

그래서 그런가.
하나님이 나에게 그부분을 훈련시키시는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제일 약한부분, 버리기 힘든 부분.
기도할때마다 그것때문에 울었다. 너무 아파서.
근데, 믿음이 강해진건지 훈련을 잘 받고 있는건지, 시간이 흘러서 그런건지-
하나님이 날 만드신 최종 목적이 하나님 영광 받으실려는거지
날 고통중에 머무르게 하시려는게 아니지 않나 싶어진다.
지금 이시간 가운데서도 내가 감사하며 영광 돌리기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겨우. 막. 이제서야.

어제 한인교회 수요예배를 다녀오는 밤에 주차하고 내려서 하늘을 보면서 앤이
"나중에 올리비아 엄마가 한국에서 볼 수 없는 저 많은 별을 보면 좋아하실까?"
오늘 낮에 점심을 먹고 동네를 한바퀴 돌면서 팝콘처럼 하얀꽃이 핀 나무그늘을 보면서 앤이
"나중에 올리비아랑 엄마가 나무그늘에 앉아서 놀면 좋아하시겠지?"

내 초긍정 남편이 나에게 서서히 초긍정을 물들이고 있나보다.